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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private review 2021. 8. 4. 20:04
(Bleak Night) 디테일이 뛰어난 비평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 어쩌다 빠지게 됐는지에 대해 서술한 글이니 편하게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이동진 평론가에게 가 있다면 나에겐 이 있다. 리뷰글을 하나씩 적어보자고 다짐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나의 인생 영화 . 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영화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시간을 버리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을 보게 됐냐면, 이제훈이라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겐 한동안 ‘신인 배우’가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상식에서 이제훈 배우가 으로 수상하는 걸 보았다. 오래간만에 생긴 궁금증에 찾아보니 언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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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윤감독, 2021fiction 2021. 8. 4. 11:45
* “토렌트를 써서 헤어졌다고?” 응,이라고 서희가 짧게 말하고 양꼬치를 쯔란에 살포시 찍었다. 서희의 왼쪽 볼 안으로 양고기가 사뿐히 들어갔다. 얼마 전, 서희는 소개로 알게 된 남자가 있었다. 여러 가지가 무던히 잘 맞는다며 세 번째 만남에 바로 연애를 시작해 알콩달콩 사귀는 티를 어마어마하게 냈는데, 그런지 두 달도 되지않아 헤어졌다고 했다. 이유는 남자친구가 토렌트를 이용해서. 얘기는 이랬다. 남자친구네에 놀러 가서 섹스를 마치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무슨 영화가 보고 싶냐고 물었고, 서희는 에릭 로메르 영화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야 너는 거기서 쉽게 타란티노나 우디 앨런이나 말하지 무슨 로메르를 얘기를 해 너도 참. (나는 듣다가 잠깐 이렇게 반응했다.) 하여튼, 남자친구는 서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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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빌라, 2021fiction 2021. 8. 4. 11:43
* 재호와 나는 장미 빌라에 살았다. 이름 그대로 담에 흐드러지게 장미가 늘어져있는 빌라. 나는 103호, 재호는 101호. 그게 나와 재호가 친해진 이유였다. 재호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품앗이처럼 서로 음식을 주고받고, 마주치면 자상하게 인사를 했다. 학교에는 재호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의 친구는 최재호, 다른 재호는 윤재호. 둘은 확연히 달랐다. 최재호는 축구하는 애, 윤재호는 음악 하는 애. 최재호는 까무잡잡한 애, 윤재호는 허여멀건 애. 최재호는 키가 큰 애, 윤재호는 평균의 키. 최재호는 와일드 윤재호는 센티멘탈. 보통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친해지지 않던데, 재호와 재호는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들을 최재, 윤재,라고 불렀다. 윤재는 최재와 내가 같은 빌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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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 (片鱗), 2016essay 2021. 8. 4. 11:32
나의 편린 (片鱗) 때는 초등학생 3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우리집 주변에는 놀이터가 여러개 있었는데, 그 중 그네가 유일하게 3개가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다른 놀이터는 모두 그네가 2개였다.) 그 날은 그네가 3개있는 그 놀이터가 가고 싶었다. 날씨가 흐렸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놀이터에는 다른 아이들은 없고 나와 친구 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구름다리도 걸으면서. 그리고 이제 그네를 타야하는데, 가운데 그네에 웬 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어 친구랑 옆에 나란히 타고 싶은데. 그 때는 그게 중요했다. 친구랑 옆에 나란히 앉아서 탔어야 했다. 그래서 그네를 타지는 못하고 그네 주변을 어물쩍 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비키지 않았다. 그네 타야되는데. 친구는 아직 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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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사물들, 2019essay 2021. 8. 4. 11:25
어제의 사물들 1 난 옷과 신발을 사게 되면 처음 샀을 때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들을 일절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막 입는 편이고 책도 그렇다. 가지고 다닐 때는 이것저것 다 들어간 가방에 쑤셔 넣어 모서리 여기저기가 낡고 읽으면서 좋은 부분은 펜으로 밑줄도 치고 책날개가 없으면 페이지를 접어놓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마음은 사물이 내 손을 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이다. 처음 같은 새 상품의 퀄리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 스크래치와 주름 모두 내 것이 되어 히스토리를 가지는 것 같아서 나에겐 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2 언젠가 사진을 불에 태운 적이 있었다. 잊고 싶은 시간이 담겨있던 사진이라 불에 태웠는데 막상 불에 타고 있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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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의 상수역, 2019essay 2021. 8. 4. 11:24
검정치마의 상수역 - 검정치마의 ‘상수역’은 나의 ‘상수역’과 같은가? 지난 2월 12일 검정치마의 새 앨범이 나왔다. 앨범명은 [THIRSTY]. 타이틀곡은 ‘섬 (Queen of Diamonds)’이었고, 내가 꽂힌 곡은 ‘상수역’이었다. 상수역에 자주 가서 그런가, 제목부터 내 마음과 닿아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노래의 가사 또한 왠지 모르게 공감이 됐다. 아무튼,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나만의 기억이 있다. 상수역에서 약속이 있던 날이었는데, 유치하게 ‘상수역’을 재생시키고 상수역으로 향했다. 겨울이 떠나지 않고 봄은 아직 오지 않아서 날씨가 좀 쌀쌀했다. 바람이 내 머리칼을 뒤로 쓸었고, 내 귀에선 계속해서 ‘상수역’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리까페에 들어갔다. 거기엔 날 기다리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