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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편린 (片鱗), 2016
    essay 2021. 8. 4. 11:32

    나의 편린 ()

     

    때는 초등학생 3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우리집 주변에는 놀이터가 여러개 있었는데, 그 중 그네가 

    유일하게 3개가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다른 놀이터는 모두 그네가 2개였다.) 

    그 날은 그네가 3개있는 그 놀이터가 가고 싶었다. 

    날씨가 흐렸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놀이터에는 다른 아이들은 없고 나와 친구 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구름다리도 걸으면서. 

    그리고 이제 그네를 타야하는데, 가운데 그네에 웬 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어 친구랑 옆에 나란히 타고 싶은데. 그 때는 그게 중요했다. 친구랑 옆에 나란히 앉아서 탔어야 했다. 

    그래서 그네를 타지는 못하고 그네 주변을 어물쩍 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비키지 않았다. 그네 타야되는데. 

    친구는 아직 그네 탈 마음이 없는지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흙을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네 타고 싶은데. 아저씨가 비켜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찰나, 

    아저씨가 나에게 ‘몇살이니?’라고 물었다. 열한 살이요. 갑자기 내 손을 움켜 잡고는 

    연신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을 했다. 그 때 내 손에 뭐가 닿았고 나는 영문을 몰랐다.

    그러다 내 손이 닿는 무언가를 봤는데, 그건 다름 아닌 그 늙은 남자의 성기였다. 

     

    나는 생에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달려본 적이 없다. 친구를 잡고 집까지 얼마나 뛰었는지. 

    집에 가자마자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울면서 몇분동안 손을 물에 씻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순간을 너무 씻어내고싶었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있을만큼 트라우마인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했었다. 사실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나중에 자식 낳으면 놀이터 불안해서 보내겠냐.’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했었다.

     

    나는 이 외에도 지하철에서 몰래 도촬(도둑촬영)을 당할 뻔 했던 적도 있고

    이래저래(관계적인 이유로) 그래선 안되는 사람이 키스를 하자고 졸라댔던 적도 있었으며

    술자리에선 결혼을 한 남자가 끈적하게 쳐다보더니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던 적도 있었다. 

    이 외에도 자잘하게 겪은 일 들이 있지만 그걸 나열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싶어, 예시는 이만 줄인다.

     

    내 삶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후에 여성이 성적으로 피해를 입는 뉴스가 더 잘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뉴스에서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참혹해서 나는 가끔 나에게 있었던 일은

    너무 시시한데 내가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을 성적인 물체로 여기는 사회가 싫으면서도 

    여성을 성적인 물체로 생각하는 건 다름아닌 나였다는 것이다. 

    왜 그 정도 상처는 아프다고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왜 그 정도 아픔은 끌어안고 살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나를 우울한 기억이 있는 슬픈 애로 봐주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먼지 한 톨의 크기 만큼도 없다.

    나는 나같이 ‘이 정도 일들은 여자들 다 겪고 살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바탕해 그런 것쯤은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단념하지 않았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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