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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글, 2018essay 2021. 8. 7. 21:15
서울의 글
오래살던 동네를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1월에 시작했으니 약 10개월이 지났다.
동네에서 매일같이 ‘서울’을 염원하고
이 동네를 뜰거라고, 맨정신에 그리고 취했을 때
입이 마르고 닳도록 다짐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재수가 좋아 대학교도 동네에서 해결봤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기억이 많이 쌓여있고
기억들은 물론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그만큼 슬프고 잊고싶은 기억들도 있었다.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싶었다.
성공하면 다 모르는 척 할 수 있거나
안주삼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롭게 살고싶은 마음이랄까.
새로운 학교에 전학생으로 살고싶기도 했고
영화 <영원한 휴가>의 알리처럼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서울에 가기 전날 내가 좋게 읽었던 책들을
캐리어 한 가득 담았다.
좋았던 기억만 가져가고 싶었고
좋은 부분만 보여주고 싶었다.
다들 내 마음에 공감할까? 아무튼 그랬다.
서울에서의 삶은 실로 재미있었다.
화려한 거리와 화려한 사람들
몇시에 나가도, 몇시에 들어와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늦게까지 놀다가 택시를 타고 귀가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택시비.
서울을 열심히 즐겼다. 마음껏 느꼈다.
가끔 가족행사가 있어 동네에 갈 때가 되면
히스테릭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외면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내 인생에
다시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늘 늦은 밤에 도착하려한다.
여전한 동네를 보면 안정감을 느끼다가도
오래 머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동네를 많이 사랑하는 부모님에겐
서울에가서 놀기만하고 연락을 잘 안하는 내가
싸가지없는 딸일 수도 있을 거고,
동네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모든 걸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철썩같이 믿는 내가
친구들에겐 여전히 겉멋든 친구 일 수도 있을거다.
사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일 없는 날엔
폐인처럼 뒹군다.
혼자서 와인을 병나발 불며 울다가 잠들기도 하고
하루종일 허리와 오른손이 뻐근할 정도로
누워서 핸드폰만 만질때도 많다.
서울에서는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행복도 이쯤되니 잘 모르겠다.
이제는 영감(inspiration)을 찾는 것도 어렵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도 어느덧 끝나간다.
계약이 끝난 후에 서울생활의 정리를
생각해봤었지만 그래도 나는 서울에서 지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행복을 찾고 싶었던 마음의 모양을
바꾸어 이 곳에서 행복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나의 어린 마음과 여린 마음으로 서울을 버텨내보려 한다.
모쪼록 가끔 서울에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서 봐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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