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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직도 네 아빠를 믿니, 2020fiction 2021. 8. 6. 15:46
넌 아직도 네 아빠를 믿니 그게 내가 엄마한테 제일 자주 들은 말이었어. 그래서 난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한다는 것도 믿지 못했어. 엄마가 뭘 잘못해서 아빠랑 같이 사는 줄 알았지. 근데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는 거야. 그 얘기를 처음 들을 때 속으로 생각했어. 어? 아닌데? 우리 엄마 아빠 서로 안 사랑하는데? 참 이상하지. 근데 결혼식은 또 했더라. 둘이 입 맞추는 사진도 있어. 진짜 남들처럼 드레스 입고, 턱시도 입고. 젊었더라. 아니 어렸다고 해야 맞겠다. 물어봤어. 엄마는 아빠 좋아해? 빨래를 탁탁 개면서 그러더라. 좋아하긴 개뿔. 철없을 때 뭣도 모르고 시집온 거지. 그러면 그때는 좋았냐고 물으니까 기억 안 난대. 근데도 밥은 꼬박꼬박 다 챙겨주더라. 근데도 그 말을 늘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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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사 두 번째 학교, 2020fiction 2021. 8. 6. 15:45
첫 번째 인사, 두 번째 학교 엄마가 현관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보경아, 미용실 가서 머리 좀 다듬고, 목욕만 하고 오자, 응? 보경은 식탁 근처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갔다 오면 기분 좋잖아. 싫어? 보경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고개를 겨우 들고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보경이 말했다. “엄마… 안 가면 안 돼?” “…그래 그러면 쉬자 집에서.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아니… 미용실이랑 목욕탕 말고. 학교.” 내일, 보경은 학교에 간다. 보경의 두 번째 고등학교. 학교를 이동하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담임 선생님이 엄마와 상담을 했고, 다시 엄마와 보경이 며칠 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엄마가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보경이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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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만주와 지구 젤리, 2020fiction 2021. 8. 6. 15:43
밤 만주와 지구 젤리 알람이 울렸다. 신혜는 덜 뜬 눈으로 찌개를 데웠다. 노트북을 열고 영화 를 틀었다. 신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 가장 좋아하는 감독 이창동. 신혜는 달리 볼 게 없으면 늘 를 틀어놨다. “나 멋쟁이로 보여요? 흐흐 멋쟁이 아니에요” 반찬을 꺼내며 신혜가 대사를 따라 했다. 어떤 거에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달고 사는 신혜의 성향은 음식에서도 그랬다. 지금은 김치찌개에 꽂혔다. 거기에 진미채볶음과 조미김. 엊그제 계란 프라이를 추가했던 걸 제외하면 일주일 내내 이렇게 아침을 먹고 있다. 밥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한다. 전날 생각한 옷을 꺼내 입고, 8시 30분 열차를 탄다. “신혜 씨는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스님처럼 살아?” 회식 자리에서 팀장이 자주 하는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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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상처 8번째 쿠폰, 2020fiction 2021. 8. 6. 15:41
3번째 상처 8번째 쿠폰 “대일이한테 또 연락왔어” 주리가 소은에게 말했다. 대일은 주리의 전 애인이다. 둘의 헤어짐은 이랬다. 학생인 대일은 돈이 없었고, 주리에게 연애가 부담이 된다고 했다. 대일을 많이 좋아한 주리는 돈 같은 건 신경쓰지 말라고, 내가 일하니까 더 많이 내면 된다고 말했다. 주리는 대일이 자신과의 관계마저 놔버려야 될 만큼 재정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고 엉엉 울었지만 소은은 속으로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이 궁하면 돈을 벌면 되지 주리를 버리네. 소은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은이 봤을 때 대일은 형편없었다. 그중 가장 최악이었던 건 대일의 음주운전 사건이었다. 대일이 주리와 두 번째 재결합을 한 날, 대일은 주리를 택시 태워 보내곤 음주 단속에 걸렸었다. [씨발 단속 걸렸어 인생 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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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 앤 리셋 (Save and Reset), 2020fiction 2021. 8. 6. 15:37
세이브 앤 리셋 (Save and Reset) “그걸 벌써 버렸어?” 병운이 말했다. 이전 남자친구 상우도 선영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걸. 벌. 써. 버. 렸. 어. ?” 이 문장의 포인트는 ‘버렸어?’가 아니라 ‘벌써’에 있다. 왜 벌써 버렸니? 글쎄, 왜 벌써 버렸을까. 솔직한 말로는‘네가 다시 날 찾을 줄 몰랐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영은 이미 모범 답안을 뱉고 있었다. 힘들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었다. 힘들긴 했지만 못 견딜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선영이 벌써 버린 물건은 지갑이었다. 헤어졌어도 그렇지 지갑을 굳이 버릴 필요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지갑은 선영도 있다. 조금 헤지긴 했지만 돈이 빠질 정도로 헐거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쓰기에 불편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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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의 마음, 2019fiction 2021. 8. 6. 15:36
희수의 마음 신도림역에서 희수를 봤다. 희수는 울고 있었다. 나는 원래 신도림역에 가지 않는다. 오늘만 우연히 온 건데, 앞으론 다시 올 일이 없을 텐데, 여기서 희수를 보다니. 희수는 소리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희수도 날 보았을까? 난 몇 초간 멍하니 희수를 바라봤지만 다가갈 순 없었다. 왜 우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난 그냥 ‘슬픈 일이 있나 보다. 그러니까 저렇게 울겠지. 그것도 지하철역 안에서’라고 생각하고 시선을 거뒀다. 나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계속해서 희수를 생각했다. 이러다 희수가 지하철에 뛰어들면 어떡하지. 아니야 요샌 스크린도어가 생겼으니까 죽으려도 죽을 수 없지. 하지만 희수는 왜 울고 있었을까. 애인이랑 헤어졌나? 재빨리 희수의 SNS를 들어갔다. 아니다. 애인과의 사진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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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망생 수정이, 2018fiction 2021. 8. 6. 15:34
지망생 수정이 1 연기자 지망생 수정이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교실을 꾸미기 위해 교실 뒤 게시판에 아이들 마다 각자의 사진과, 자신의 장래희망을 써서 붙이기로했다. 모두에게 장래희망을 적는 종이가 나눠졌다. 수정이는 한숨을 쉬었다. 왜냐면 며칠 전 엄마와 연기를 하고싶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가 큰소리로 싸웠기 때문이다. 수정이는 고민을 하다 체념을 하고 세글자를 적었다. [회사원]. ‘어린 내가 이렇게 생기없이 회사원이라고 적은걸 알면 마음이 참으로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썼다. 그 종이는 1년 내내 붙어있었고 수정이는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져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 수정이는 엄마에게 용기를 내서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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