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wasreality_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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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기, 2019essay 2021. 8. 7. 21:56
다시 보기 1 고등학생 때 윤성현 감독의 이라는 한국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내가 너무 많이 좋아해서 그 당시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스무 살이 넘어서도 몇 번을 더 봤다. 거짓 안 보태고 총 열 번은 봤을 거다. 처음에 봤을 당시엔 독립영화를 처음 접한 터라 이런 영화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혔는데, 더 신기한 건 다시 볼 때였다. 처음 봤을 땐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성인이 되고 나선 고등학생 때 이해되지 않았던 대사가 이해됐다. 그래서 백희만 이해됐던 첫 감상과 다르게 기태도 이해됐고 나중엔 동윤이도 이해가 됐다.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거듭해서 보다 보니 이런저런 시선에서 모든 인물과 장면이 이해가 됐다.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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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사물들, 2019essay 2021. 8. 7. 21:54
어제의 사물들 1 난 옷과 신발을 사게 되면 처음 샀을 때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들을 일절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막 입는 편이고 책도 그렇다. 가지고 다닐 때는 이것저것 다 들어간 가방에 쑤셔 넣어 모서리 여기저기가 낡고 읽으면서 좋은 부분은 펜으로 밑줄도 치고 책날개가 없으면 페이지를 접어놓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마음은 사물이 내 손을 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이다. 처음 같은 새 상품의 퀄리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 스크래치와 주름 모두 내 것이 되어 히스토리를 가지는 것 같아서 나에겐 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2 언젠가 사진을 불에 태운 적이 있었다. 잊고 싶은 시간이 담겨있던 사진이라 불에 태웠는데 막상 불에 타고 있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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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비밀, 2019essay 2021. 8. 7. 21:43
솔직한 비밀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다. 나는 위로 오빠가 한 명 있고, 13살 터울이 난다. 13살이라는 말을 들으면 실감이 안 나겠지만, 상상해보자. 내가 7살 때 나의 오빠는 20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와도 생활패턴이 전혀 맞지 않아서 정말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처음엔 무서워서 집에 돌아오면 우는 일이 내 일과였는데, 몇 번 울어보니 아무리 울어도 엄마 아빠는 퇴근시간이 돼야 오신다는 걸 알았다. 즉,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뭐라도 계속 생각하려고 했다. 있었던 일, 좋은 노래 같은 거 말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져 갔다. 자라면서는 두 분 다 집을 비우시는 날이 생기면 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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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가 될 수 없는 하나 (One can’t be all), 2019essay 2021. 8. 7. 21:39
전부가 될 수 없는 하나 (One can’t be all) 얼마 전 타투이스트친구(@hate_charlie)에게 오른쪽 옆구리에 타투를 받았다. 지금 내 아이디인 it was reality를 빨간색으로 새겼다. 타투라고 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 영원히 사랑할 것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겠지만 사실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저 내 이번 책 제목이기도 했고 타투이스트 친구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고 그냥 타투가 하고 싶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마음으로 타투를 했다. 나는 아이디를 자주 바꾼 편이다. 수많은 아이디를 거쳤다. 기억이 나는 아이디부터 이야기해도 다섯 개가 넘는다. figfromfrance(검정치마 노래), riverinwood(산책에 빠졌던 때), sleeptight(E sens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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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인스타 스토리, 2019essay 2021. 8. 7. 21:39
트루 인스타 스토리 대학에서 과제로 쓴 글중에 ‘카메라는 내가 무언가를 찍는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내가 찍히는 사물이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이걸 느끼게 된 계기는 ‘인스타그램’이다. 지금은 나와 당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게들도 공지를 인스타그램으로 한다. 하지만 저 글을 썼을 당시에는 인스타그램 유저는 소수였다. (화자는 SNS중독자이기 때문에 이런 흐름에 빠르게 반응함.) 나는 그 소수에 속했고, 몇 안되는 사람들과 팔로우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좋아요 를 누르던 중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무려 아이디를 보지 않고 사진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진을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만 가진 초능력이 아니다. 이 상황은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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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상한 취향, 2019essay 2021. 8. 7. 21:37
나의 고상한 취향 검정치마, E sens, Nirvana, Cigarette after sex, Nothing But Thieves, 방백, Mac Demarco, 이소라, 김사월, David Bowie, 오존, 장기하의 얼굴들, 혁오, 김일두, 유재하, 산울림, 김광석, 카더가든, 빛과 소금, King Krule의 노래들과 이창동, 쿠앤틴 타란티노, 라스 폰 트리에, 짐 자무쉬, 왕가위, 레오 까락스, 스탠리 큐브릭, 장률, 자비에 돌란, 홍상수의 영화들과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헤르만 헤세, 기형도, 양귀자, 알베르 까뮈, 다자이 오사무, 알랭 드 보통의 글들. 합정의 무대륙, 앤트러사이트, 콜마인. 경복궁의 mk2, 종로의 식물, 을지로의 잔, 상수의 이리까페, 제비다방, 지금은 사라진 한강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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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미지들 , 2019essay 2021. 8. 7. 21:30
우리의 이미지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며칠 전 서울에서 밥을 먹었는데 옆 테이블 여자분들과 뒤 테이블 남녀 모두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사람들인가?’ 했는데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1000명이 넘는 분들과 팔로우를 하고 있고 당연히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있는데 나에게 기억이 스치는 게 신기했지만 보통 내 또래들이 가는 지역이나 가는 가게가 비슷하니까 또 그렇게 신기할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요즘엔 정말이지 개개인들 모두 많은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영상물들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유투버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브이로그(V-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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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파인애플, 2019essay 2021. 8. 7. 21:29
통조림 파인애플; 내가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것들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영원에 대한 소망 1 얼마 전에 을지로 만선 호프에서 우산을 잃어버렸다. 파란색 장우산. 몇 년 동안 썼던 우산이었는데 날씨 때문에 자리를 여러 번 옮기다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주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우산을 잃어버리는 게 무슨 대수일까 싶지만, 그 잃어버리는 일이 지겨웠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일부러 눈에 쉽게 띌만한 파란색, 크기가 큰 장우산으로 샀던 거였는데, 잃어버렸다. 비가 조금만 오는 날엔 갖고 다니기가 걸리적거리는 크기였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고 다녔었는데, 이렇게 쉽게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그 순간에 우산의 색깔과 크기 같은 건 아무 소용도 없었다. 2 아마 내 또래 모두가 그렇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