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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미지들 , 2019essay 2021. 8. 7. 21:30
우리의 이미지들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며칠 전 서울에서 밥을 먹었는데 옆 테이블 여자분들과 뒤 테이블 남녀 모두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사람들인가?’ 했는데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1000명이 넘는 분들과 팔로우를 하고 있고 당연히 모르는 분들이 훨씬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있는데 나에게 기억이 스치는 게 신기했지만 보통 내 또래들이 가는 지역이나 가는 가게가 비슷하니까 또 그렇게 신기할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요즘엔 정말이지 개개인들 모두 많은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영상물들도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유투버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브이로그(V-log)를 한다. 다들 본인에 대한 이미지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다양한 순간들을 기록한다.
그 결과, 온라인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우울한 사람, 키치 한 사람, 재밌는 사람, 예쁜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치명적인 사람, 쿨한 사람 등 이런저런 사람들. 근데 또 다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개인의 이미지들이 재밌다가 또 이렇게 된 시대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다 혼잣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가. 다들 자기를 봐달라고 고함치는 것 같아 보여 그런가. 나는 그 많은 이미지들과 캡션에서 이따금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너무 센치한 해석인가? 시대가 점점 더 화려해지는데 점점 더 외로워 보인다. 서울이 아니라 섬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선 인생의 목적이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시대는 장애물이나 벽 없이(물론 감정 안에서의 장애물과 벽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관계할 수 있는 화려한 시대가 되어 사랑이 어디에나 있어 보이지만, 어디에도 없어 보이기도 한다.
장국영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감정이 피곤해 세상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난 세상을 살아가는 거 이상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나도 미성숙해서 이렇게 바뀌어가는 시대를 불편해하다가, 적응하다가, 사랑할 모습을 찾아보려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어깨에 힘 빼고, 유행하는 태도 흉내 내지 않고, 자연스럽고 정확한 태도를 가져서, 쫓기듯이 많이 사랑하지 않고, 천천히 잘 사랑하고 싶다. 쉽지 않은 일들을 잘 해보겠다고 나열해 자신은 없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해 따라가기가 벅차다. 그래도 바랄 수는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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