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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상한 취향, 2019essay 2021. 8. 7. 21:37
나의 고상한 취향
검정치마, E sens, Nirvana, Cigarette after sex, Nothing But Thieves, 방백, Mac Demarco, 이소라, 김사월, David Bowie, 오존, 장기하의 얼굴들, 혁오, 김일두, 유재하, 산울림, 김광석, 카더가든, 빛과 소금, King Krule의 노래들과 이창동, 쿠앤틴 타란티노, 라스 폰 트리에, 짐 자무쉬, 왕가위, 레오 까락스, 스탠리 큐브릭, 장률, 자비에 돌란, 홍상수의 영화들과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헤르만 헤세, 기형도, 양귀자, 알베르 까뮈, 다자이 오사무, 알랭 드 보통의 글들. 합정의 무대륙, 앤트러사이트, 콜마인. 경복궁의 mk2, 종로의 식물, 을지로의 잔, 상수의 이리까페, 제비다방, 지금은 사라진 한강진의 웨이즈오브씽과 플리플리까지.
내가 지금 열거한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취향 어린 것들이다. 정확하게는 타인에게 얘기할 때 약간의 프라이드(Pride)가 담긴 채로 말하는 취향들. 이걸 왜 썼냐면, 하나 고백할 게 있어서. 고백한다. 나는 저 멋진 것들이, 웃기지만 내 자신인 줄 알았다. 무언가를 너무 사랑하다 보면 자신과 동일시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다는 데, 아마 내가 그랬던 걸까? 그 취향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내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간단하게 말하면 가끔 왜 명품 들었다고 자기가 명품인 줄 아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내가 그랬다. 아마 내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던 것 같다.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걸 더 잘 알았거나. 그래서 모르는 척 하고 싶어 ‘난 남들과 같지 않아!’를 표상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저 취향들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운명처럼 느꼈다. 물론 취향의 교집합에서 오는 친밀감이 분명히 존재한다지만 난 좀 오버스러웠다. 아무튼, 저 취향들을 안다면 진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알고 있는 나 자신도 무척 사랑했다. 나도 진짜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자부심이 무슨 소용일까? 그것들을 좋아한다는 사실로 내가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진짜로 품위 있는 건 그걸 만든 사람들이지, 내가 아니었다. 사실상 내가 아닌 누군가도 돈을 지불한다면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취향들인데. 무언가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생각과 감정들을 기성품에 기대어 나 자신이라고 표현하는 게 나는 썩 완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은 내가 발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품들에는 확인과 위로를 받으며 지탱할 힘을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었고, 나는 내가 구원해야 했다.
좋은 콘텐츠들을 접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취하면서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데 지쳤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내가 보고 듣는 게 괜찮게 느껴지게끔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레퍼런스(reference)가 되었으면 한다. 나 까짓게 이루지 못할 꿈을 생각하고있다고 느껴도 저 문장은 고칠 수 없다. 왜냐면 진심이니까. 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로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적어도 그 누구도 모를 마음은 아닐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글도 내가 레퍼런스(reference)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썼다. 이 글은 이만 마치고 다음 글을 쓰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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