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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인스타 스토리, 2019essay 2021. 8. 7. 21:39
트루 인스타 스토리
대학에서 과제로 쓴 글중에 ‘카메라는 내가 무언가를 찍는 사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내가 찍히는 사물이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이걸 느끼게 된 계기는 ‘인스타그램’이다. 지금은 나와 당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게들도 공지를 인스타그램으로 한다. 하지만 저 글을 썼을 당시에는 인스타그램 유저는 소수였다. (화자는 SNS중독자이기 때문에 이런 흐름에 빠르게 반응함.) 나는 그 소수에 속했고, 몇 안되는 사람들과 팔로우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좋아요 를 누르던 중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무려 아이디를 보지 않고 사진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진을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만 가진 초능력이 아니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이 비유될 수 있다. ‘강남스타일’로 유명한 싸이를 생각해보자. 싸이가 후속곡으로 ‘나팔바지’라는 노래를 냈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에게 ‘나팔바지’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보자. 상대방이 굳이 ‘싸이’노래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도 우리는 그 노래가 싸이의 노래라는 것 쯤은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것은 초능력이 아니다. 그저 한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뿐이다. 다시 인스타그램에 비유하자면, 한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의 톤, 분위기 등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분위기를 품고있는 사람일지 가늠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이전에는 페이스북이 있었다. 페이스북 에서는 내 피드로 내가 단정지어지기 보다는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의 지분이 컸다. 그래서 엄지손가락 힘이 찰나라도 풀려 더블클릭을 해버리면 ‘걔가 좋아요 누른 거 봤냐’라는 말이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쉽게 보여지고 판단지어지는 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나 같지만,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떠났다기보단 인스타그램이라는 새로운 SNS가 등장하면서 그냥 ‘넘어왔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페이스북보다는 인스타그램이 좀 ‘쿨’해보이는 느낌에 시작한 사람들도 더러 있는 걸로 알고있다. (화자는 이 두개가 짬뽕되었음.)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다르게 인스타그램을 말그대로 ‘떠난다’. 그런데 떠나는 사람들의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에 인스타그램을 자주 들락날락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떠나는 것일까.
3자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글을 쓰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지만 사실 나도 인스타그램을 잠깐 떠났었다. 약 두달 전 쯤에 내 피드에는 600장정도의 사진이 있었다. 그 600여장의 정사각형태의 사진들은 차곡차곡 모여서 날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다시 앞의 말을 상기시켜보자. ‘카메라는 실상 내가 찍히는 사물’이라는 말. 나는 그 600장 정도 되는 사진들을 모두 삭제 했었다. 삭제한 채로 며칠을 보냈었다. 그 이유는 날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 아님을 알게돼서였다. 아니, 정정한다. 드러낸다는 게 아니라 꾸며내기에 가까워지는 날 직면하는 일은 즐거울 수 없었다. 허세도 정도껏 재밌다. 나는 내 사각형이 근사해질수록 내가 근사해진다고 착각했으며 타인을 정사각형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 사람은 진짜네. 이 사람은 껍데기네.’따위의 말을 하면서.
하지만 나는 다시 인스타그램을 한다. 이런 글을 길게 늘어놓고서 다시 한다는 게 등신같지만 뭐, 등신 맞다. 외로우면 죽는 등신. 그리고 ‘이 SNS를 접으면 내가 찍은 사진과 글은 누가 봐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전에 부렸던 허세를 좀 빼고 (아직 다 빠지진 않은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진정성을 판단하고 사진을 업로드 한다. SNS따위가 뭐라고‘피곤하게 산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슬쩍 물어본다. ‘혹시 텀블러는 안하세요?’라고. 그러면 열에 세명은 하고 두명은 계정은 있다고 한다. 아마 텀블러가 좀 버벅대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인스타그램에 다시 돌아오는 몇몇 사람조차도 사라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까 하다가 최근에 본 ‘트루먼쇼’의 대사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니까 인사를 미리 해두죠. 굿 모닝, 굿 애프터눈, 굿 나잇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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