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한 비밀, 2019essay 2021. 8. 7. 21:43
솔직한 비밀
나의 부모님은 맞벌이였고,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다. 나는 위로 오빠가 한 명 있고, 13살 터울이 난다. 13살이라는 말을 들으면 실감이 안 나겠지만, 상상해보자. 내가 7살 때 나의 오빠는 20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와도 생활패턴이 전혀 맞지 않아서 정말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처음엔 무서워서 집에 돌아오면 우는 일이 내 일과였는데, 몇 번 울어보니 아무리 울어도 엄마 아빠는 퇴근시간이 돼야 오신다는 걸 알았다. 즉,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뭐라도 계속 생각하려고 했다. 있었던 일, 좋은 노래 같은 거 말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져 갔다. 자라면서는 두 분 다 집을 비우시는 날이 생기면 내심 좋아했고, 엄마는 그걸 눈치채고 서운해하셨다. 딱히 일탈이나 비행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 고요함 속에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불 끄고 보는 게 좋았다. 어쩌면 이게 더 서운하신 부분일 수도 있다.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없으니까 편안해하는 거. 교복도 입고 학원도 다니게 되면서는 어느 정도 가족들과 생활패턴이 맞춰졌다. 나는 학원, 오빠랑 부모님은 퇴근. 그리고서 집에 오면 다들 얼추 시간이 맞았다. 즉,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어졌고, 나에겐 사춘기가 찾아왔다.
잠깐 시간을 다시 앞으로 돌려, 내가 처음으로 우울감을 느꼈을 때는 초등학생 때였다. 남들보다 빨리 느낀 건지,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이런 얘기는 딱히 꺼내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번뜩 오늘은 어제와 같고 어제는 엊그제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렇다면 내일도 같을 거라는 생각에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선 좋지 않은 낯빛으로 집으로 귀가했다. 엄마는 그런 날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학교에서 혼났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건지 몰라서 그냥 기분이 안 좋다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초등학생 때 그런 감정을 느꼈으니 사춘기가 찾아온 당시에는 참 엉망진창이었다. 집에만 오면 가방을 내려놓고 엉엉 울었다. 공부는 하기 싫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니 어디에서도 안정된 모습으로 있지를 못했다. 난 불안정한 내 모습이 싫었고, 그 불안정한 모습을 숨기려고 노력했다. 단어가 노력이지 매 순간 연기를 했다. 그러니까 연기했다는 건, 거짓으로 행동했다는 말이다. 학원에 가야 엄마가 안심을 하니까 학원에 갔고, 학원에선 숙제를 내주니까 늘 숙제를 해갔는데, 난 숙제를 한 적은 없다. 답안지를 보고 베끼거나 적당히 고민하고 문제를 푼 듯이 흔적을 꾸며서 제출했다. 그러니 내 성적은 하위권이었고, 발송되는 성적표는 내가 챙겼다. 엄마에겐 위조된 성적표를 보여주어 엄마를 안심시켰다.
이렇게 계속 살다 보니 좀 어느 순간 지긋지긋해졌다. 맨날 맨날 거짓말하고 과장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연기도 지겨웠다. 머리가 커져서 그런진 몰라도 그렇게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수학 과목은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말하며 내 점수 대비 수학 학원비는 낭비니까 수학 학원은 그만 다니겠다고 했다. 이런 솔직함의 연장선으로 학교에서는 야자가 하기 싫은 날이면 담임 선생님께 찾아가 야자가 너무 하기 싫다고 제발 집에 보내달라고 했다. 예전의 나였으면 또 그럴싸한 거짓말을 만들어 연기했을 거다. 가족 행사가 있다는 둥, 병원에 가야 한다는 둥. 아무튼 선생님께선 다음엔 꼭 하라고 하셨고 난 다음엔 정말로 야자를 했다. (하지만 그다음엔 안 했다) 그렇게 별다른 계기 없이 거짓말은 내 인생에서 사라져갔다.
근데 또 거짓말이 완전하게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난 중학생 때부터 사진을 하고 싶어 했는데,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그래서 난 사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척 학창시절 내내 연기하고 살았다. 그래서 내 점수가 갈 수 있는 가까운 학교에 합격을 한 상태에서 예대 수시 2차 모집에 부모님 몰래 지원을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운이 좋게 붙어버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또 부모님한테 솔직하게 말해야 했다. 사실 예대를 지원했고, 붙었다고. 여기로 가고 싶다고. 부모님은 내 앞날을 걱정하셨지만, 내 마음에 져주셨다.
여차여차 성인이 되니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일도 없었다. 어느 날엔 홍대에서 술을 마시다 눈을 떴는데 집이었다. 처음으로 필름이 끊긴 날이었는데 엄마는 내 방바닥을 닦고 계셨다. 엄마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술이 안 깨더라. 심지어 오른쪽 신발이 없었다. 이런 상황까지 일어났으니 더 이상 거짓말 같은 건 소용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고 죄송하다고 한 후 한동안 자중했다.
사춘기는 끝났지만 ‘졸업 후 방황’이 나를 찾아왔다. 사춘기 때 좋은 친구들을 만나며 사라진 줄 알았던 우울감은 게임에서의 마지막 단계의 보스 몹처럼 더 강력한 크기로 나에게 찾아왔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하지만 나의 패배를 부모님께 눈치채게 할 순 없었다. 이제 성인인데 내 감정은 내가 컨트롤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식사 시간엔 식사만 했고, TV를 볼 땐 TV만 봤다. 솔직해져 버린 나는 솔직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졌으니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나는 솔직해져서 비밀이 많아져 버렸다. 내 나름대로 삶을 버티는 방식인 것 같은데 좋은 방식인지는 아직까지도 판단이 안된다. 일정 나이를 먹고 나면 다들 이렇게 지내는 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의 유년시절 방식이 여전히 나를 떠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돈도 내 손으로 벌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져 걱정되는 게 없어졌지만, 다른 종류의 걱정이 많아졌다. 그래도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니 우리 가족은 이런 나의 특징은 아시는 것 같다. 솔직하고, 비밀이 많은 막내딸. 다음 주 중에는 집에 가기로 했다. 이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당장 다음 주에 식탁에서 어떤 말도 못 하겠지만, 늘 가지고 있는 부채감으로 이 글을 써보았다. 조용하게 불이 꺼진 내 집에서 나는 이렇게 또 비밀스럽게, 가족들 몰래 가족들 이야기를 쓴다.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보기, 2019 (0) 2021.08.07 어제의 사물들, 2019 (0) 2021.08.07 전부가 될 수 없는 하나 (One can’t be all), 2019 (0) 2021.08.07 트루 인스타 스토리, 2019 (0) 2021.08.07 나의 고상한 취향, 2019 (0)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