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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2021. 7. 23. 12:21

    교회 안 다니시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상은 씨는 교회 안 다니시죠?” 그럼 나는 대답한다. “네 맞아요. 안다녀요 교회.” 나도 안다. 내 겉모습과 행동으로 보이는 모습이 교회라는 곳의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있다는 걸. 하지만 내가 교회에 한 발짝도 들인 적이 없던 것은 아니다. 나도 교회를 다녔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쯤? 아니 더 오래전 일수도 있다. 아무튼 나도 교회를 다녔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모태신앙이었고 그 친구가 나에게 교회에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는 상관없었다. 그냥 그 친구랑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나가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앞으로 친구랑 교회에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 아침 9시까지 교회에 가야 되니 나를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교회에 가기 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엄마가 나에게 돈을 몇 푼 주셨던 것 같다. 나는 돈을 왜 주냐고 물었고, 엄마는 헌금으로 내야 된다고 대답했다. 헌금이 뭔진 몰랐지만, 아무튼 그 돈을 쥐고 교회에 갔다. 이런저런 차례가 지나고 엄마가 일러준 헌금시간이 되었다. 나는 돈을 넣었다. 뭔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긴 했으나 이게 이상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여러친구와도 친해졌다. 나도 친한 내 친구들을 전도하고 예배가 끝나면 다 같이 기도실이나 근처 놀이터에 가서 한낮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이니 하느님이니 하는 목사님의 말씀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이 두시간 남짓한 예배시간이 끝나면 달란트 한 장을 받고 친구들과 보내는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중학생이 됐다. 점점 교회가 따분해졌다. 헌금도 아까웠고, 시간도 아까웠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홉 시가 임박한 시간에 대충 집히는 옷을 입고 저금통에서 500원 동전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교회에 갔다. 

     

    성탄절도 재미가 없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예수를 위해서 우리가 왜 재롱을 떨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들과도 더 놀지 않았고, 내가 데려왔지만 나보다 교회에 흥미를 붙인 친구들은 성가대도 했지만, 나는 성가대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성가대 연습을 하는 모양새도 영 찐따같아 보였고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이렇게 흥미란 흥미는 다 떨어져 갈 무렵, TV에서 우연히 반올림을 보게 됐다. 반올림 3. 옥림이가 나오는 편은 아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아무튼, 그게 딱. 일요일에 내가 교회에 가는 시간이 본방송시간이었다. 나는 더더욱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처럼 다시 보기 서비스가 잘 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라 본방송을 놓치는 것은 꽤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교회에 가지 않는 날도 생겼다. 그리 늦은 것도 아닌데 그냥 늦게 일어났다고 말하며 TV 앞에 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 발톱이 무슨 문제가 생겨서 못 걷는 건 아니지만 걷는 게 불편했다. 좋은 핑계라고 생각하고, 교회에 선수를 쳐 연락했다. “발가락이 아파서 못 갈 것 같아요.” 돌아오는 대답은 “못 걸을 정도니?”였다. 그리고 이어서 하신 말은 “그럼 버스 타고 오면 되지 않니?” 였다. “발이 걸을 때 아프다고요. 그리고 거기 가는 버스 없어요.”라고 짜증을 섞어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이 이후로 교회에 가지 않았다. 내 아픔을 헤아려주는 것보다 무조건 나오는 게 먼저인 그딴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 일로 나는 교회를 싫어하는 입장으로 변했고, 교회니 예수니 목사니 하느님이니 하는 것들은 멍청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됐다. 이런저런 감정도 많이 마주하고, 인정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많은 일을 겪다보니 세상에 내가 혼자라는 걸 알게 됐다. 난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점점 슬픔을 많이 느끼게 됐고, 기댈 데 없이 휘청이며 서 있게 됐다.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지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 나도 무언갈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원하고 확실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할 게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아 사람들이 이래서 교회를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한다.

     

     진실된 진짜 사랑은 죽음에 대한 구원이 되어준다고 믿는다네. 모든 두려움은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에서 나오지(…) 

    모든 이들에게 그렇듯 다시 죽음의 두려움이 돌아오기 전까지, 

    열정이 충만한 사랑으로 죽음을 그들의 마음에서 몰아낼 있기 때문이지.’

     

    나도 헤밍웨이의 마음과 같이 사랑이 주는 감정 중 가장 끝에 있는 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지 않던가. 신의 응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 자체가 구원이 아닐까. 그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 같은 걸 모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끝에 있는 게 죽음이 아니라 환희와 구원이라고 믿는 것. 그게 바로 구원 아닐까. 

     

    언제 모르는 사람이 교회를 다니냐 물어서 다니다가 그만뒀다고 했다. 이유를 묻기에 “믿음이 안 생겨서요.”라고 대답했다. 믿고자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믿을 수 있는 건 능력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하나님이나 예수님 존재의 유무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일요일 아침마다 그 존재를 믿으며 꾸준히 나가는 그 마음이 나도 가지고 싶을 뿐이다. 연약한 사람들이 종교에 기대어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보다 약한 건 무엇도 믿지 못하는 나였다. 무엇을 믿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믿을 수 있음이다. 나는 믿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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