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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나의 힘 (Lack is My Middle Name), 2018essay 2021. 7. 23. 12:24
결핍은 나의 힘 (Lack is My Middle Name)
영화 <언노운 걸>에서 의사 제니는 한밤 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진료가 끝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니는 소녀의 행적을 따라나선다. 영화후기에 이런 코멘트가 있었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희망이나 꿈이 아니라 죄책감, 트라우마, 부채감이다.’ 나는 이 말에 완전하게 동의했다.
“내가 사진이랑 글을 사랑해서 하고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
그냥 나는 내가 특별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지를 열심히 찾다가
내가 선택한 도구가 사진이랑 글이었던 것 같아. 진짜 순수하게 사랑하는 게 아닌 것 같아.
그냥 내가 멋있고 싶어서..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하는 것 같아.”
친구와 술을 마시며 고백에 가깝게 내뱉은 고민이었다. 사진과 글을 끊임없이 하고싶어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 때문이다. 빌어먹을 나 때문이다. 하자있는 내 모습을 보면 외면하고 싶었고, 포장하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귀여운 하자로 보였으면 했다. 결핍은 존중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 결핍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는 건 옷을 벗어버리고 헐벗은 몸에 난 상처를 드러내며
“사실은 난 이런 상처가 있어. 나는 이런애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행위는 아주 복잡한 감정을
이해해야 하고 인정해야하며 자칫하면 더 큰 상처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나 이거 좋아해서’라는 로맨틱한 멘트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속인다. ‘나는 이걸 좋아해서 하는 거야.’라고.
왜 이렇게 우울한 글만 쓰며, 왜 항상 우울감에 집중하냐고 하는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나도 우울한 글을 써서 우울한 모습을 표면으로 드러내고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울감을 느낄 때, 바로 그 때에 나는 글이 쓰고 싶어진다. 위로를 받고싶은건지 표현을 해서 징징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일기도 마음이 너덜너덜해 진 날에 유독 길게 쓰게 되며, 죽을 것 같이 고독해지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정들을 글로도 토해내지 않으면 안에서 썩어나 날 더 많이 괴롭힐 것 같았다. 좋아하는 수필가 에밀시오랑은 “창조는 죽음이라는 마수로부터 일시적인 구원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은 정확하고 행복은 모호하다.
늘 이런 감정들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며 글을 써왔지만, 오늘만큼은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도 죄책감이 든다.
사람들에게 본인의 행동의 근원이 사랑이 아니라 결핍이라는 진실을 말해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잘 알고있다.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이 없다는 현실 속 절망감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 온다는 걸, 나도 아주 잘 알고있다.
찾아온 사람들이 진실을 드디어 알게됐다고,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그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우쭐하고 뻐댈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때마다 마주 앉은 사람들의 쓸쓸한 그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영 서글퍼졌다. 어린애한테 크리스마스에 오는 산타는 산타가 아니라 니 아빠라고. 산타는 없다고 얘기하면 애를 울리는 것 밖에 더 되나? 그 애는 앞으로 평생 크리스마스를 아무 감흥없이 기다릴텐데 말이다. 내가 그 짓거리를 하고있는 것 같다. 나도 사랑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글과 사진을 하고 싶다. 사랑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걸 믿게끔하는 재주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있다. 거기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진실이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맞는 말이다. 때로 진실은 사람에게 고독을 안겨준다. 착각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결핍은 나의 힘’이라는 제목을 지어 결핍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로맨틱한 글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결핍이라는 힘을 가지고 싸워나가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나는 그 힘을 가지고 싸워나가려 노력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그 싸움에서 나름의 승리를 이룬 자들에겐 짧은 이 글로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부디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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