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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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파트, 2019essay 2021. 8. 7. 21:19
아름다운 아파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던 집은 반지하였다. 옆집엔 장애가 있으신 아버지를 둔 가족이 살았고 윗집엔 나에게 인자한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시지만 매일같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움을 하시는 중년 부부가 살았다. 그래도 집집마다 꽤 살갑게 관계하며 살았다. 내 또래들도 많았고 우리는 친하게 지냈다. 언제는 혼자 있는데 집에 벌레가 있어서 엉엉 울며 101호 친구에게 달려가 제발 잡아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안 하지만 참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아무튼, 맞벌이로 열심히 돈을 모으신 우리 부모님께선 어느 날 우리 집이 이사를 갈 거라고 했다. 마음이 떨렸다. 새로운 동네에 가서 새로운 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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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뉴 트렌드, 2018essay 2021. 8. 7. 21:17
잇츠 뉴 트렌드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문장을 줄인 말이다. 이 문장은 내 추론이 맞는다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저 표현했던 문장이다. [생활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다.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듯 문장이 세상에 표현되면 사람들은 공감하고 공감한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른다. ‘좋아요’를 눌린 게시물들은 공유되고 그 문장은 더 널리 빠르게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문장은 이내 길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맛있고 저렴한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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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 (片鱗), 2016essay 2021. 8. 4. 11:32
나의 편린 (片鱗) 때는 초등학생 3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우리집 주변에는 놀이터가 여러개 있었는데, 그 중 그네가 유일하게 3개가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다른 놀이터는 모두 그네가 2개였다.) 그 날은 그네가 3개있는 그 놀이터가 가고 싶었다. 날씨가 흐렸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놀이터에는 다른 아이들은 없고 나와 친구 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구름다리도 걸으면서. 그리고 이제 그네를 타야하는데, 가운데 그네에 웬 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어 친구랑 옆에 나란히 타고 싶은데. 그 때는 그게 중요했다. 친구랑 옆에 나란히 앉아서 탔어야 했다. 그래서 그네를 타지는 못하고 그네 주변을 어물쩍 거리고 있었다. 아저씨가 비키지 않았다. 그네 타야되는데. 친구는 아직 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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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사물들, 2019essay 2021. 8. 4. 11:25
어제의 사물들 1 난 옷과 신발을 사게 되면 처음 샀을 때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들을 일절 하지 않는다. 소위 말해 막 입는 편이고 책도 그렇다. 가지고 다닐 때는 이것저것 다 들어간 가방에 쑤셔 넣어 모서리 여기저기가 낡고 읽으면서 좋은 부분은 펜으로 밑줄도 치고 책날개가 없으면 페이지를 접어놓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마음은 사물이 내 손을 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이다. 처음 같은 새 상품의 퀄리티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 스크래치와 주름 모두 내 것이 되어 히스토리를 가지는 것 같아서 나에겐 그 모습이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2 언젠가 사진을 불에 태운 적이 있었다. 잊고 싶은 시간이 담겨있던 사진이라 불에 태웠는데 막상 불에 타고 있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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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사랑을, 2019essay 2021. 7. 27. 13:41
사랑으로 사랑을 좋은 전시나 좋은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면 난 늘 묻는다. “사람 많아?”라고. 그 이유는 사람이 많으면 그 장소에서 들리는 무자비한 셔터소리와 스튜디오처럼 이용되고 있는 풍경들을 별로 보고싶지 않다. 물론 나도 좋은 곳에 가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긴 하지만, 뭐 아무튼 과한 건 별로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좋은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고 입소문이 난 공간들에는 ‘지나친 촬영은 삼가해주세요’라는 안내가 따른다. 왜일까? 꼴보기 싫어서? 물론 그것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안내의 핵심은 주인들이 그런 행동들로 인해 자신의 공간을 망치는 걸 막기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그 공간을 정말 알고싶어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셔터소리와 인생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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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존재 이유, 2016essay 2021. 7. 23. 17:32
미디어의 존재 이유 1) 처음 만나게 된 친구와 버스에 탔다. 같이 이어폰을 나눠 꽂았다. 나에게 무슨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같이 힙합 음악을 듣다가 아차 싶어서 되물었다. ‘너는 무슨 음악 좋아해?’ 그 친구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줬다. 내 취향도 아니었고,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 노래 좋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노래가 좋지는 않았지만, 아무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악습관 중에 하나는 사람을 무지하게 가리는 것이 있다. 성격은 물론이고 옷이며 보는 영화며 신고 온 신발 취향 모든 게 내가 정해 놓은 스펙트럼 안에 있어야만 했다. 그러던 내가 조금 나아지게 된(고쳐지지 않았음을 돌려 표현) 계기는 조금 허무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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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상한 취향, 2018essay 2021. 7. 23. 17:28
나의 고상한 취향 검정치마, Nirvana, Cigarette after sex, 방백, Mac Demarco, 이소라, David Bowie, 오존, 장기하의 얼굴들, 혁오, 김일두, 유재하, 김광석, 카더가든, King Krule의 노래들과 이창동, 쿠앤틴 타란티노, 라스 폰 트리에, 짐 자무쉬, 왕가위, 레오 까락스, 스탠리 큐브릭, 장률, 자비에 돌란, 홍상수의 영화들과 무라카미 하루키, 한강, 헤르만 헤세, 기형도, 양귀자, 알베르 까뮈, 다자이 오사무, 밀란 쿤데라의 글들. 합정의 무대륙, 앤트러사이트, 콜마인. 경복궁의 mk2, 종로의 식물, 을지로의 잔, 한강진의 웨이즈오브씽, 지금은 사라진 플리플리까지. 내가 지금 열거한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취향 어린 것들이다. 정확하게는 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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