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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파트, 2019essay 2021. 8. 7. 21:19
아름다운 아파트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던 집은 반지하였다. 옆집엔 장애가 있으신 아버지를 둔 가족이 살았고 윗집엔 나에게 인자한 표정으로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시지만 매일같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움을 하시는 중년 부부가 살았다. 그래도 집집마다 꽤 살갑게 관계하며 살았다. 내 또래들도 많았고 우리는 친하게 지냈다. 언제는 혼자 있는데 집에 벌레가 있어서 엉엉 울며 101호 친구에게 달려가 제발 잡아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연락을 안 하지만 참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아무튼, 맞벌이로 열심히 돈을 모으신 우리 부모님께선 어느 날 우리 집이 이사를 갈 거라고 했다. 마음이 떨렸다. 새로운 동네에 가서 새로운 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디로 가냐 물으니 그냥 동네 안에서 이사하는 거니 전학은 안 가도 된다고 하셨다.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사를 하기 얼마 전에 엄마와 아빠가 이사 갈 집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얼마나 가까우면 걸어갔다. 이사를 가긴 가는 건가 싶어 하던 생각이 들 무렵 나는 난생처음 보는 높은 건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학원이나 백화점 갈 때나 타던 엘리베이터. 우리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려 16층까지 올라갔다. 우리 집이 16층이라니. 낯설었다. 우리는 초인종을 눌렀고 안에 계시던 분께선 문을 열어주셨다. 낮이었고, 집은 매우 환했다. 남향이라 빛이 잘 드네요 호호. 엄마가 말했다. 반지하인 우리 집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이곳저곳을 보았지만 눈에 다 담기지 않았다. 우리 집보다 두 배는 넓은 그곳은 나에게 세상에 이런 집도 있구나 싶은 기분을 들게 했으니까.
우리는 집을 구석구석 구경했고 황홀했다. 집이 좋다고 말하고 엄마와 아빠는 그 집을 떠날 집주인 분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주체를 못 하시겠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시면서 우셨다. 그리고 그다음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마무리를 하셨을 텐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예정대로 이사했고 그 집은 우리 가족들의 물건들로 채워졌다. 새 침대, 첫 피아노, 새 티비, 첫 소파.
우릴 그렇게 만족시켜줬던 그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은 전보다 쾌적하고 편안한 생활을 했다. 햇빛을 느끼고 이웃집의 요란한 소리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 문득 스무 살이 넘어서 전에 살던 반지하 집 앞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사 올 때는 몰랐는데 아파트 후문으로 가니 전에 살던 집이 도보로 5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있었다. 정말 몰랐는데, 몰랐던 내가 좀 못되게 느껴졌다. 아무튼 걸어서 그 집을 가려고 골목 어귀에 섰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여기를 들어가도 되는 걸까? 나 여기 왜 가려고 하지? 가서 뭘 보고 뭘 확인하고 싶은 걸까. 그래도 뭐 무슨 일이 나겠어? 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왜 이럴까. 첫 번째 빌라, 두 번째 빌라를 지나 내가 살던 빌라 앞에 섰다. 다시 한 번, 정말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리 집은 빌라를 들어가야 볼 수 있었는데 정말 나도 영문을 모르겠지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재빨리 그 골목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가까스로 진정을 한 뒤에 따라오는 감정을 살펴보니 죄책감이었다. 그 집이 뭐라고 쳐다도 못보고 난 뭐가 잘났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파트 후문 쯤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했다. 여기는 또 언제부터 내 거였다고 여기서 편안함을 느끼는걸까. 나도 모르게 뭔가 잘못 흘러간 게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의심이 피어났다.
그런데 나는 또 그렇게 편안한 그 아파트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 이제 막 1년이 지났는데 이 집은 또 언제부터 내 거였다고 이 집이 편해졌고 그 아파트를 가면 무언가 편하지 않다. 싸가지가 없는 건지 과거를 사랑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건지 센서티브 해서 그런 건지 뭔지 짐작되지 않지만 확실한 거 하나는 과거의 공간에서 과거를 마주칠까 두려워했다는 거다. 지금과 같지 않은 내 마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족 모임이 있어 집에 가면 그 아름다웠던 아파트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가는 게 보인다. 가끔은 세면대만 보아도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니 반지하 집을 쳐다도 못 보겠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집을 보러 온 우리 가족 앞에서 우시고 말았던 그 아주머니가 이따금 생각이 난다. 그 아주머니는 이 아파트 근처에 오시면 또 눈물이 나시려나. 모자란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모쪼록 좋은 곳에서 좋은 감정으로 지내셨으면 좋겠고 나는 내가 제발 괜찮은 어른이 되어 과거도 끌어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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