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ction

엔딩 크레딧, 2021

이상은 2021. 8. 6. 15:54

엔딩 크레딧

 

종환은 선우를 소개로 만났다. ‘ 주변에 너처럼 영화 진짜 좋아하는 애가 하나 있는데••• 만나볼래?’ 선우에 대한 말이었다. 

 

선우는 영화에 대해 많이 알았다. 영화를 말하면 감독 이름을 알고 있었고, 감독의 예전 스타일이 어땠는지,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감독의 유년기는 어땠는지까지 많은 알고 있었다. 종환은 선우와 연애를 수밖에 없었다. 오래도록 그런 연애를 꿈꿔왔기 때문에. 카페에 앉아서, 길을 걸으면서, 술을 마시면서, 알몸으로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영화 얘기를 하는 연애. 설명하지 않아도 착착 알아듣는 애인. 둘의 사이는 빠른 속도로 깊어져갔다.

 

종환은 선우와 함께 영화제에 갔다. 거기엔 영화관이 모여있었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악수를 하고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둘은 그들을 지나 영화관에 들어갔다.

 

일어나?’

 

영화가 끝나고, 불이 반쯤 켜졌을 어둠 속에서 종환이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일어나? 선우는 잠깐 어리둥절한 눈으로 종환을 올려다봤다. ... 이런 데에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앉아있는 예의겠구나... 종환은 박자 늦게 생각이 들었다. 머쓱하게 다시 앉았다. 마침내 엔딩 크레딧마저 끝나고, 영화관이 환하게 밝아졌을 종환은 조금 어색한 얼굴을 하고 선우에게 말했다. 

 

끝난 알고 하하....”

 

영화관을 나서면서 종환은 생각이 많아졌다. 선우가 나를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나를 기본적인 문화 예절도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식당에서 창밖을 보는 선우를 보면서도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 바깥을 보지? 눈을 피하고 싶은 건가? 내가 흥미롭지 않은 건가? 숙소로 돌아와서 선우가 먼저 씻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종환은 그들이 밥을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씻고 나오면 영화 얘기를 꺼내야지. 하지만 선우는 나오자마자 피곤하다는 말을 하더니 침대에 풀썩 엎어져 눈을 감았다. 그날 종환은 선우의 말린 등을 보고 오랫동안 불안했다. 

 

다음날 종환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의식적으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기분 탓인지 식당에선 어제와 다르게 선우가 종환을 보고 새글새글 웃는 같았다. 종환의 마음이 다시 편해졌다. 둘은 여느 때와 같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다시 시작된 영화에서 종환은 영화에 집중할 있게 됐고, 엔딩 크레딧도 자연스럽게 감상할 있게 됐다. 

 

다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종환은 문득 대학생 만났던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영화를 좋아했던 공통점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외의 거의 모든 것들이 달랐던 관계. 게다가 서로 어떤 것도 굽히지 않아 헤어진 관계. 종환은 잠든 선우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엔딩 크레딧을 보게 만든 애인이라니. 종환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온 연애는 영화 얘기를 하는 연애가 아니라, 많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연애라는걸. 종환은 마음속으로 선우가 오래오래 자신의 인생의 여주인공을 맡아주기를 바라며 선우가 덮고 있는 옷을 조금 정리해 주었다. 선우의 얼굴 뒤로 초록색 풍경이 지나갔다. 어떤 영화 장면보다도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