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사랑을, 2019
사랑으로 사랑을
좋은 전시나 좋은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면 난 늘 묻는다. “사람 많아?”라고. 그 이유는 사람이 많으면 그 장소에서 들리는 무자비한 셔터소리와 스튜디오처럼 이용되고 있는 풍경들을 별로 보고싶지 않다. 물론 나도 좋은 곳에 가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긴 하지만, 뭐 아무튼 과한 건 별로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좋은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고 입소문이 난 공간들에는 ‘지나친 촬영은 삼가해주세요’라는 안내가 따른다. 왜일까? 꼴보기 싫어서? 물론 그것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안내의 핵심은 주인들이 그런 행동들로 인해 자신의 공간을 망치는 걸 막기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그 공간을 정말 알고싶어서 온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셔터소리와 인생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편을 겪게되면 그 공간이 너무 좋아 사랑하게돼도 아마 갈 때마다 망설이게 될 것이다. 좋은데,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랑하는데 고통스러워서.
나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영화관에는 잘 가지 않는다. 보통 집에서 보거나, 운이 좋아 때가 맞으면 영화제에 가서 보곤한다. 주말에 북적북적대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분위기를 좋아하긴하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영화가 나오면 그 관람 방식을 선택하진 않는다. 왜냐면 관객들의 태도 때문인데, 아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적어도 한 명은 핸드폰을 켜서 화면의 불빛으로 눈이 부시게 만들고, 적어도 한 명은 옆 사람과 잡담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속이 터진다. 내가 좋아하는 걸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나와 속상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채로 영화관을 나서야하니까말이다.
다시 전시와 카페로 돌아가보자. 전시장은 아무리 좋은 전시를 기획한다 할지언정 이제는 스튜디오에 불과하다. 이제는 전시장에서 남들 인생샷찍는 걸 방해하지 않으며 그들 뒤에 서서 작품을 관람해야한다. 대림미술관의 라이언맥긴리 전시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인데, 난 그 전시를 봤는데 대체 뭘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멋진 사진과 라이언맥긴리의 멋진 태도가 적힌 글들 모두 최악의 관람 경험으로 내 기억 속엔 빈 껍데기만 남았다.
그렇게 내가 결정한 태도는 ‘앞으로 대림미술관 안가’였다. 하지만 대림미술관이 무슨 잘못인가? 대림미술관은 열심히 기획해 라이언맥긴리의 사진을 공간에 맞게 잘 전시했다. 대림미술관은 잘못이 없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좋은 음악이 나오고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멋진 카페가 듣는 소리는 ‘인스타충 카페’다. 이 소리를 왜 카페가 들어야할까? 하나하나 세심하게 정성들여 준비한 카페가 들을 소리가 아니다. 카페도 마찬가지로 잘못이 없다.
그래서 좋은 전시나 좋은 공간들을 많이, 쉽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는 사람이 많으면 이상하게 한켠에 의심을 하게 된다. 내가 과연 그 곳에 가서 그 수많은 좋다는 사람들처럼 좋은 경험을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진짜일지 가짜일지 소용없는 저울질을 하곤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SNS의 폐해? 그게 없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는 건 아닌 것 같다. 정말로 문제는 진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한다’라는 헉슬리의 말. 난 원래 이 말을 조금 비틀어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가 망하게 한다’라고 말하려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진짜로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럴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장소를 가서 그 장소에 즐기러 온 사람들의 경험을 망치고, 사랑하는 영화를 보러 가서 그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의 경험을 망치는 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태도일까? 정말로 전시를 보고싶어 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미술관은 우스운 포토존이 됐고, 영화관에서 대화를 하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속 대사들은 허공에 의미없이 흩어진다. 즉, 진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다가가선 그 대상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유형이 된다. 유형이 되면 유행이 되고, 유행이 되면 사라진다. 빈 껍데기만 덩그러이 놓인다. 알맹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해진다. 사람들은 껍데기만으로도 괜찮다고 하지를 않나, 알맹이가 있던 말던 관심도 없지를 않나. 모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자는 꽉 막힌 소리를 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한다고 했던 것들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혹은 진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망하게 하고, 그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하는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충 이 정도면 하트모양이고 사랑이라고 판단내려버리거나 다른 사람 모두가 사랑하니 비슷한 방식과 태도로 사랑을 흉내내는 건 사랑이 아니다. 착한 건 나쁜 게 아니라는 노래 제목처럼 사랑은 그런 게 아니고, 착한 건 착한 거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