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사랑으로 사랑을, 2019

이상은 2021. 7. 27. 13:41

사랑으로 사랑을

 

 

 

좋은 전시나 좋은 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면 묻는다. “사람 많아?”라고. 이유는 사람이 많으면 장소에서 들리는 무자비한 셔터소리와 스튜디오처럼 이용되고 있는 풍경들을 별로 보고싶지 않다. 물론 나도 좋은 곳에 가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긴 하지만, 아무튼 과한 별로다. 그래서 그런지 때때로 좋은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고 입소문이 공간들에는지나친 촬영은 삼가해주세요라는 안내가 따른다. 왜일까? 꼴보기 싫어서? 물론 그것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내의 핵심은 주인들이 그런 행동들로 인해 자신의 공간을 망치는 막기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공간을 정말 알고싶어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셔터소리와 인생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불편을 겪게되면 공간이 너무 좋아 사랑하게돼도 아마 때마다 망설이게 것이다. 좋은데, 좋지 않을 같아서. 사랑하는데 고통스러워서. 

 

 

나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영화관에는 가지 않는다. 보통 집에서 보거나, 운이 좋아 때가 맞으면 영화제에 가서 보곤한다. 주말에 북적북적대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분위기를 좋아하긴하지만 진짜로 좋아하는 영화가 나오면 관람 방식을 선택하진 않는다. 왜냐면 관객들의 태도 때문인데, 아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적어도 명은 핸드폰을 켜서 화면의 불빛으로 눈이 부시게 만들고, 적어도 명은 사람과 잡담을 나누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속이 터진다. 내가 좋아하는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나와 속상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채로 영화관을 나서야하니까말이다. 

 

 

다시 전시와 카페로 돌아가보자. 전시장은 아무리 좋은 전시를 기획한다 할지언정 이제는 스튜디오에 불과하다. 이제는 전시장에서 남들 인생샷찍는 방해하지 않으며 그들 뒤에 서서 작품을 관람해야한다. 대림미술관의 라이언맥긴리 전시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인데, 전시를 봤는데 대체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멋진 사진과 라이언맥긴리의 멋진 태도가 적힌 글들 모두 최악의 관람 경험으로 기억 속엔 껍데기만 남았다. 

그렇게 내가 결정한 태도는앞으로 대림미술관 안가였다. 하지만 대림미술관이 무슨 잘못인가? 대림미술관은 열심히 기획해 라이언맥긴리의 사진을 공간에 맞게 전시했다. 대림미술관은 잘못이 없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좋은 음악이 나오고 맛있는 커피를 내주는 멋진 카페가 듣는 소리는인스타충 카페. 소리를 카페가 들어야할까? 하나하나 세심하게 정성들여 준비한 카페가 들을 소리가 아니다. 카페도 마찬가지로 잘못이 없다. 

 

 

그래서 좋은 전시나 좋은 공간들을 많이, 쉽게 있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다는 사람이 많으면 이상하게 한켠에 의심을 하게 된다. 내가 과연 곳에 가서 수많은 좋다는 사람들처럼 좋은 경험을 느낄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진짜일지 가짜일지 소용없는 저울질을 하곤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걸까?

SNS 폐해? 그게 없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는 아닌 같다. 정말로 문제는 진짜로 사랑하는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망하게 한다라는 헉슬리의 . 원래 말을 조금 비틀어서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가 망하게 한다라고 말하려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로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장소를 가서 장소에 즐기러 사람들의 경험을 망치고, 사랑하는 영화를 보러 가서 영화를 보러 사람들의 경험을 망치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의 태도일까? 정말로 전시를 보고싶어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 사이에서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전시를 관람하고 미술관은 우스운 포토존이 됐고, 영화관에서 대화를 하러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 대사들은 허공에 의미없이 흩어진다. , 진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다가가선 대상을 초라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유형이 된다. 유형이 되면 유행이 되고, 유행이 되면 사라진다. 껍데기만 덩그러이 놓인다. 알맹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해진다. 사람들은 껍데기만으로도 괜찮다고 하지를 않나, 알맹이가 있던 말던 관심도 없지를 않나. 모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자는 막힌 소리를 하자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한다고 했던 것들을 제대로 방식으로 혹은 진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망하게 하고, 그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하는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충 정도면 하트모양이고 사랑이라고 판단내려버리거나 다른 사람 모두가 사랑하니 비슷한 방식과 태도로 사랑을 흉내내는 사랑이 아니다. 착한 나쁜 아니라는 노래 제목처럼 사랑은 그런 아니고, 착한 착한 거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