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기다리고 있던 게 이런 거 였을까, 2019
날 기다리고 있던 게 이런 거 였을까
요즘은 뭔가가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묘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이상했다. 뭐가 날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난 여러 가지 짐작을 했다. 우울감, 새로운 사람, 기대했던 자리, 새로운 작업, 등등을 생각했다. 행복인지 불행인지조차 짐작할 수 없어 짐작을 종류별로 했다. 은연중에 계속해서 경계했다.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뭐가 날 기다리고있는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이 우스워졌다. 도대체 뭐가 날 기다리고 있겠어.
오늘은 일이 유난히 바빴다. 8시간의 근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다. 그래도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쉬는 날이니 괜찮기도 했고, 힘은 들지만 바쁜 만큼 시간이 잘 가서 좋기도 했다. 내일은 약속이 2개나 있다. 점심 약속, 저녁 약속.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 점심, 앞으론 자주 못 볼 사람과 저녁. 뭘 입고 나갈지 고민했다. 더울 테니까 가볍게 민소매를 입을까도 생각했고, 위아래 모두 흰색으로 맞춰서 입을까도 생각했다. 악세사리도 주렁주렁 화려하게 끼고, 가방은 노란색 가방과 하늘색 가방 중에서 고민을 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내일 뭐 입지?’로 가득찼다.
집에 돌아와 빨래를 돌려놓곤 음악을 크게 틀고 샤워를 했다. 하루 종일 쌓였던 먼지가 씻겨나가 너무 개운했다. 오래간만에 팩도 했다. 틀어놓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샤워하는 동안 온 연락들에 답장을 하고 있는데,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가 시골이라고 했고, 이유는 셋째 이모부가 돌아가셔서. 나는 다급히 노래를 끄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디예요? 엄마 시골이지. 셋째 이모부가 돌아가셨어. 그니까요 엄마.. 무슨 일이에요? 아프신 건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도 아프셨어요? 괜찮으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기막히지.
장례를 여쭤보니 내일 아침이면 장례가 끝이라고 했다.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왜 오늘 일을 했고, 나는 왜 알지 못했으며 나는 왜 지금 서울에 있고, 나는 왜 운전면허가 없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첫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발인이 끝날 때 도착할 것 같다고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가겠다고 대답했다. 이모부는 안 계시지만 이모부의 사진이라도 봐야겠고 이모도 봐야겠고 엄마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소와 가는 길을 검색해 머릿속에 입력해놓고 내일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 통화를 끊었다. 거울을 쳐다보니 팩이 말라갔다. 화장실에 팩을 씻으러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팩을 닦아내기 위해 연신 세수를 하는데 머리가 멍했다. 이모부가? 돌아가셨다고?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시 의자에 앉아 답장하지 못했던 연락들을 답장하려 채팅방을 켰는데, 좀 전까지 나와 내 친구는 죽고 싶다고 세상 사는 거 너무 버겁다고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일 입겠다는 민소매? 흰색 옷? 그런 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옷장에서 검은색 옷을 꺼냈다. 구겨져있던 부분을 펴고 먼지를 털어냈다. 버스를 예매하려고 보니 간신히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아침 6시 40분 버스인데 이렇게 사람이 많다고? 다 우리 이모부 뵈러 가나.
가만히 앉아 멍한 상태로 담배를 피웠다. 셋째 이모부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외부인이었던 셋째 이모부.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는데. 우리 가족한테도 정말 잘해주셨는데. 믹스커피랑 커피 과자를 좋아하시고 고기를 좋아하시고 라면을 좋아하셔서 어린 나랑 입맛이 맞는다고 웃으셨었는데. 커피는 늘 따뜻한 커피만 고수하셨었는데. 냉커피는 커피가 아니라면서. 피 안 섞인 외부인이지만 수많은 친척 중에 유일하게 좋아하고 편했던 어른이었는데. 무슨 일일까. 이모도 이제 좀 안정되시는 것 같았는데. 우리 이모는 어떡하지. 그런 이모를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어떡하지.
엄마는 통화를 끝내시면서 “엄마 속상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떡하지. 기억은 연결되어 나에게 18년 전 외할머니 장례식을 상기시켰다. 할머니는 나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었는데. 근데 우리 엄마는 왜 또 나보고 이모부 장례에 오지 말라고 하셨을까. 나는 오빠에게 연락을 했다. 이모부 돌아가신 거 알고 있냐고 물으니 어제 시골에 다녀왔다고 했다. ‘왜 나만 몰랐어’라는 문장을 쓰다가 바로 지웠다. 다른 부분으로 배려하신 거일 거야. 몇 번을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엄마가 나한테 최대한 말을 안 하려고 했었나 봐. 왜인진 모르겠지만 신경 쓰게 하기 싫었던 거겠지]라고 보냈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했고, 오빠도 출근했다가 중간에 퇴근하고 가게 됐어] 나도 모르게 이 와중에 오빠에게 칭얼댔고, 오빠는 그 와중에 나를 달래줬다.
새벽 한시 반이 되어서 이제 두 시간 반 밖에 못 잔다고 생각하고 얼른 자려고 했지만 눈을 감는 게 불편했다. 뭔가 죄스럽기도 해서 잠이 도통 오지 않았다. 몇 번을 그렇게 더 시도하다가 잠자는 걸 포기했다. 그냥 일어나서 허기진 배를 달래려 냉장고를 열어 가지를 썰었다. 전자레인지에 데운 햇반과 가지, 그리고 김을 꺼내 우적우적 먹었다.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상태로 밥을 다 먹은 뒤 담배를 피웠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지난 날로 나를 데려갔다. 나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외할머니의 말이 피부 속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담배를 끄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꼭 성공하리라고 다짐했다.
아침 5시 20분쯤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우산을 챙겼다. 이어폰을 꽂았지만 노래를 듣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를 안 들어야 맞는 걸까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이 더 우스운 것 같아서 그냥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기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노래를 재생시켰다. 아무튼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를 예매할 때 만석인 상태를 보고 ‘다들 우리 이모부 장례식장에 가는 게 아닐까?’ 하는 내 예측은 단단히 착각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 장례식장에 가는 건 나 하나뿐임이 틀림없었다. 내 왼쪽 자리는 분명히 예약되어 있었는데 사람이 오지 않는다. 분명 빈자리가 아니었는데 빈자리가 됐다. 출발 시간인 6시 40분이다. 버스는 달린다.
약 두 시간 뒤, 버스는 홍성에 도착했다. 나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택시를 잡고 홍성추모공원에 가달라고 했다.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따라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간 것 같은데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장례식장이 있다고? 길을 잘 아시는 걸까 싶은 의심이 들 때쯤에 기사님이 나에게 오래 걸리냐고 물으셨다. 무슨 말씀인지 한 번에 알아듣지를 못해서 되물었다. ‘나올 때는 어떻게 나오시려고?’ ‘영구차 타고 나옵니다’라고 대답하니 ‘아, 장례식장 가시는구나’라고 하셨다. 옷도 다 검은색인데 장례식에 가지 무슨 공원에 가는 줄 아나. 아무튼 도착하니 건물 밖에 앉아계신 엄마가 보였다. 엄마랑 나는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첫째 이모가 나오셨다. 인사를 드리고 막내 이모도 만났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를 연거푸 말하다가 셋째 이모를 보았다. 얼굴이 누렇게 떴다. 와락 껴안았다. ‘이모’, ‘상은아’라고 말하며 계속 껴안고 있었다. 포옹을 풀고 이모부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내가 울 줄 몰랐는데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하는 외마디만 괴상하게 내면서 울었다. 머리가 아파졌다.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곤 평소에 잘 짓던 내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이모와 손을 잡고 껴안고를 반복하던 중, 이모부의 화장이 끝이 났다.
창 너머로 정말 딱 한 바가지 정도 돼보이는 가루가 있었다. 저게 이모부라고? 엄마는 울기 시작하시더니 ‘사람이 저렇게 나온다 상은아’라고 힘들게 말씀하셨다. 이제 영정사진을 들고 화장된 상태의 이모부를 보내드리는 의식을 치를 차례였다. 여기저기 쓰러지는 분들이 많아서 모두가 서로를 부축해야 했다. 내 눈물은 아까 그쳤고 난 절대 울지 않았다. 내가 눈물을 참게 될 줄도 몰랐는데 참기로 했다. 눈에 그렁그렁 고이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까 사진을 보고 운 게 마지막이다. 절대 울지 않았다. 엄마도 이모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다가 머리가 좀 아팠지만 기필코 울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는 이모와 며칠 더 계시기로 했다. 이모는 힘든 시기에 이모부를 만나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모는 다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고, 그 안정된 생활을 제대로 하려 시골에서 이모부와 같이 살 집을 지어서 살았는데. 이젠 그 예쁜 집에 이모가 혼자 계셔야 된다. 그런 안 좋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문득 ‘무언가 날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던 근래의 묘한 기분이 이것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했다. 어딘가에 원망하고 싶었지만 대상 없는 원망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약한 나 자신을 향한 원망이었을 수도 있고.
다행히 다음 주 주말엔 운이 좋게 이틀 연속 쉬게 되어서 이모 집에 가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엔 막내 이모와 바깥을 보며 안개가 짙다고 얘기했다. 예전에 읽었던 <무진기행>이 생각났다. 무진의 명물은 안개라던 책의 첫 구절. 안개를 보며 꼭 성공하고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계속해서 안개를 바라봤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실 아까 너랑 작년 초에 강릉 갔을 때, 네가 많이 힘들었던 게 생각나서 좀 그랬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 지나갔어 돌아볼 필요 없어] 난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안개는 여전했다. 다시 한 번, 난 저 안갯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낼 거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썼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꾸벅꾸벅 졸며 핸드폰 메모장에 이 글을 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거다. 아니, 이게 내 방식이다. 아무튼, 이모부라 사랑한다는 말을 살아계실 때 못해드려 늦게나마 소용없는 말을 해본다. 나의 사랑하는 이모부(故 장용구)를 나는 기억한다.